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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집단사고에서 벗어나는 방법

by 비와낭만 2022. 9. 27.

집단사고

-집단사고에 대항하는 법-

집단의 압력에 의해 태어난 야수는 사납고 어리석다. 그러니 야수의 털을 쓰다듬되 털 속에 숨은 벼룩을 보고 놀라지 말라. 


타이베이시는 전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질서 정연한 지하철 시스템을 갖추었다. 지상이 자동차며, 오토바이며 행인들로 홍수를 이룬다면 지하는 혼잡함 속에서도 질서가 있다. 이렇게 된 데는 특수한 지하철 문화가 한몫했는데, 그것은 바로 에스컬레이터 옆에 붙어 있던 ‘우측에 한 줄 서기, 좌측통행'이라는 슬로건 때문이다. 한 줄 서기 운동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어떤 이는 1999년부터라고도 한다. ‘한 줄 서기' 운동은 타이베이시에서 가장 성공한 캠페인으로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된 다른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 정책은 2005년 제야에 벌어진 불의의 사고의 간접적 원인으로 지목되어 변화를 맞는다. 그 불의의 사고는 당시 뉴스에서 ‘두피 박탈 사건'이라고 보도된 사고였다. 그날 타이베이 시청역사는 제야 행사에 참여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물론 사람들은 평소처럼 에스컬레이터 좌측으로 통행했다. 그러나 워낙 많은 인파에 한 여성이 밀려 넘어지면서 머리카락이 에스컬레이터에 말려 들어가는 사고가 났고, 그 여성의 두피가 벗겨지면서 현장은 피바다가 되었다. 

 


이 사건 이후, ‘한 줄 서기'가 에스컬레이터에 실리는 하중의 불균형을 초래해 고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고, 이에 타이베이시는 ‘한 줄 서기’ 운동을 중단하고 지하철 캠페인 슬로건을 ‘손잡이 잡기, 걷거나 뛰지 않기'로 변경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달라졌을까?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여전히 질서 있게 한 줄 서기를 하고 있다. 좌측통행 정책이 이미 철회되었다는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지만 여전히 우측에 한 줄 서기를 실천 중인 것이다. 다들 그렇게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동조 행동'(Conforming Behavior)이다. 

‘동조 행동'(Conforming Behavior)은 ‘군중' 혹은 어느 ‘집단의 절대다수'라는 배후의 압력이 작용했을 때 나타나는 행동을 말한다. 앞서 언급한 에스컬레이터 이야기에서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사람들이 하나의 집단에 해당한다. 비록 그들이 서로를 모르는 남남일지라도 말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보다 긴밀한 관계를 가진 학급에나 회사와 같은 다수의 집단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더 크고 전면적인 동조 압력 (peer pressure) 초래한다. 문제는 그 속에서 조금만 방심해도 ‘집단사고(Groupthink)’에 빠져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같이하기 위해 독립적인 사고를 포기하기에 십상이라는 점이다. 

삼국 시대의 문인 이강이 이런 말을 남겼다. ‘숲보다 큰 나무는 바람에 쓰러지고, 해안보다 높은 흙더미는 파도에 쓸려가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비방에 시달린다.’ 쉽게 말해서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소리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갈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수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이 작용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그 누구도 집단의 조화를 깨뜨리고, 아웃사이더가 되길 원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떠한 일을 논의할 때, 다수의 의견이 틀렸다는 것이 명백하고, 또 누군가는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도 말을 꺼내지 못해 심각한 오판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동조 압력 아래 발생하는 인지부조화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바꿔 다수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현상을 ‘집단사고'라고 부른다.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 가장 쉽게 집단사고에 빠지게 되는데, 그 첫 번째 조건은 바로 연대감을 가진 집단일 경우, 두 번째는 폐쇄적인 집단일 경우, 그리고 세 번째는 결정을 내릴 시간이 촉박한 경우이다. 

집단의식이 강할 때 동조의 압력이 개인의 주관을 억누르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려면 용기와 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려고 나서면 나를 지지해주던 사람들이 한 발 뒤로 물러서고 심지어 입장을 번복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때 그들에게 화를 내면 그들은 도리어 성을 내며 상대를 물어뜯으려 할지도 모른다. 


진실을 말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들에게 공격받을까 봐 걱정된다면 소통의 기술에 주의를 기울여보자. 예컨대 “내 생각엔 A가 확실한 정답이야"하는 표현은 삼가야 한다. 여기에는 “너희는 다 틀렸어"라는 속뜻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기 위해 공격적인 말을 더하는 것은 더더욱 금물이다. “다들 눈이 삐었나? A가 정답이 분명하고만!”이라고 말하면 순식간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눈엣가시가 되어 온갖 공격을 받게 될 테니까 말이다. 아무리 자신의 말이 옳다고 해도 최소한의 눈치는 필요한 법이다. 

 


그러니 말투를 살짝 바꿔 모르는 척 이렇게 이야기해보자. “맙소사, 내 눈이 이상한가 봐! 난 왜 A 같아 보이지? 이상하네" “내가 항상 남보다 반 박자가 늦어서 그러는데, 왜 그런 답이 나왔는지 설명해줄 수 있을까?” “내가 바보 같은 질문 하나 해도 될까?” 자조 섞인 말로 의견을 표현하면,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공격할 이유가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뭇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고도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각자의 견해에 대한 설명을 부탁할 수도 있다. 그러면 집단사고라는 이 멍청한 야수가 점차 모습을 감춰, 그동안 침묵을 선택했거나 다수의 의견을 따랐던 이들이 저마다 다른 입장을 이야기하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이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른 목소리를 담을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명심하라, 집단의 압력에 의해 태어난 야수는 사납고 어리석다. 그러니 야수의 털을 쓰다듬되 털 속에 숨은 벼룩을 보고 놀라지 말아야 한다. 분위기를 깨지 않는 선에서 센스 있게 의문을 제기하고, 이치를 따진답시고 지나치게 상대를 몰아붙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 아무리 옳더라도 이를 에둘러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몇 해 전, 인기를 끈 영화 중 (독일어로 ‘물결'이라는 뜻)라는 독일 영화가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인 역사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독일 국민들은 또 어떻게 나치의 만행을 방관했는지를 이해시키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진행한다. 학생들이 ‘디 벨레'라는 조직을 결성하도록 지도하고, ‘규율, 단결, 행동이 곧 힘'임을 강조하며, 자신들만의 구호와 제복, 제스처, 규칙을 만들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회원이 점점 늘어나면서 한 반에서 시작된 ‘디 벨레'는 정말로 교내의 새로운 물결이 되었다. 역사 선생님이 조직의 지도자로 추대되었고, 회원들은 서로의 충성심을 감시하며 비회원들에게 폭력과 협박을 가하는 등, 진정한 파시스트 단체로 변모해갔다. 무엇보다 무서운 점은 실험 진행자인 역사 선생님조차도 집단사고에 빠져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도자인 듯 보이는 그도 실은 동조 효과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집단사고는 한 번 빠지면 스스로 헤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그 영향력이 상당하다. 자신의 생각까지 왜곡되기 때문이다. 어떤 한 집단에서 집단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집단 내에 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말하는 사람을 두는 것이다. 그가 감찰 자로서 다양한 반대의견을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나 보지 못한 빈틈을 발견하게 도와주는 것이다. 영어에는 이런 사람을 일컬어 악마의 대변인이라는 뜻을 가진 ‘데블스 에드버킷'이라고 부른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비롯된 이 용어는 사실 교회에서 파견하는 정식 직위를 가리켰다. 악마의 대변인은 교회에서 인품과 덕성이 높은 인사를 성현으로 지목할 때마다 해당 후보자의 인적을 조사해 그가 성현이라 불릴 자격을 갖췄는지, 흠은 없는지를 철저히 파헤쳐 자격이 없는 사람이 사후 성현으로 떠받들어지는 일이 없도록 했다. 

진심 어린 충고는 귀에 거슬리는 법이다. 그러나 진심 어린 충고가 한 집단을, 회사를, 가정을, 그리고 사회를 구할 수 있다면 악마의 대변인을 여러 명 두어 집단 사고에 대한 의문 제기의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집단사고의 영향이 집단의 맹점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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